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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살인자의 서사 <조커 폴리 아 되> 후기

by 도중남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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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면 뉴스를 보다 보면,

'살인자의 서사를 왜 자꾸 보여주지?' 싶은 때가 많은 요즘.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고 나오면서

다시금 살인자나 범죄자의 서사를 몰라도 되겠다 싶었다.

 

살인자의 서사를 알게 되면,

그 범죄가 타당성, 정당성이 부여되기 쉬우며

사람들의 마음은 여리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언론에서 살인자가 살아온 배경,

그가 최근에 겪은 생활고 같은 것을 알려주는 것은 특히 반대한다.

 

*폴리아되 뜻

: 다중인격장애 또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뜻한다.

한 사람 안에 여럿의 인격이 존재하는 상태로

인격이 서로 다른 행동과 성격을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잡설은 여기까지 -

‘조커 폴리 아 되’는 단순히 혼란과 광기의 상징을 넘어선다.

특히, 영화에서 조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포식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의 광기를 찬양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숨겨진 포식성, 사회적 문제를 드러낸다.

이 현상은 조커의 무정부적 성향이 단순히 개인적인 혼란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1. 추천 대상

-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노래가 좋아요)

- 조커 1편을 그냥 그렇게 본 분

- 현실주의자

 

 

2. 주관적인 해석과 리뷰, 포식자에 열광하는 사람들


조커의 무대가 단순한 광기의 표출이 아니라,

포식자와 같은 무리들의 집합체로 보이는 장면은 영화 속 사회의 가장 두려운 부분을 노출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살인에 동조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의 행동은 윤리적 경계를 넘어,

사람들로 하여금 광기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배제된 이들은 조커를 영웅으로 바라보며,

그를 아이코닉하게 만든다.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며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든 연쇄 살인,

포식자에게 열광하듯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로 그를 추종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한 범죄나 폭력이 아니다.

조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도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버린 듯,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를 옹호하는 법원 앞 시위가 그러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억압받고 좌절한 이들이 어떻게 포식자가 되어

사회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조커는 단순히 개인적인 내면의 혼란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회적 현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조커를 따르는 이들은 단순한 폭도가 아닌,

억압된 분노가 폭발한 상징적 존재다.

이들의 행동은 조커의 광기를 강화하며,

그를 단순한 악당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승화시킨다.

 

법원으로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은 교도소에서 마저도

왜소하고 특이한 정신세계로 교도관들에게 조롱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가 인기를 얻고, 지지를 받게 되었을 때,

관객들은 본인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음에도'

단지 몇 가지 부분이 삶이 닮아있어서 공감하게 될 수도 있다.


3. 총평, 포식자의 열광이 남긴 사회적 질문


조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한 캐릭터의 광기를 넘어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남긴다.

포식자와 같은 존재를 따르는 이들은 왜 그에게 매료되는가?

그들이 느끼는 억압과 좌절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영화는 단순한 혼돈의 미학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심각한 문제들을 폭로하고 있다.

 

폴리아되란 결국, 조커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살면서 분통이 터져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했다.

다만, 우리는 실행하지 않는 윤리적이고 사회화가 잘된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것.


조커는 복잡한 그의 인생에서

무엇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되지 않는 그의 음악과 춤, 하물며 인생까지. 

그리고 그를 따르는 포식자 같은 무리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혼란 속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